• 국문초록
이 글은 1949년 문화냉전이란 분명한 의도에 의해 기획・탄생한 《실패한 신(The God That Failed)》이 한국에서 번역되는 맥락과 그 수용의 양상에 초점을 두고 《실패한 신》이 지닌 냉전텍스트로서의 위상과 그 영향을 구명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실패한 신》은 공산당에 입당했거나 공산주의에 동조한 바 있는 스티븐 스펜더, 아서 쾨슬러, 이냐치오 실로네, 리처드 라이트, 루이스 피셔, 앙드레 지드 등 저명한 서구지식인들의 공산주의 가담, 체험, 환멸, 탈퇴의 과정을 상세히 고백한 공산주의체험 에세이집이자 공산주의 (재)전향의 기록이다. 이 전향텍스트의 특장은 공산주의 이데올로기(소비에트체제)/자유주의 이데올로기(자본주의체제)에 대한 동시적인 비판이라는데 있다. 그러나 《실패한 신》은 CIA의 문화냉전 전략에 의해 공산주의(체제) 실패를 입증해주는 결정적 증거로 의미화 되면서 문화냉전의 대표적인 심리전 텍스트로 활용되었다. 또한 문화자유회의를 비롯한 국제적 냉전문화기구를 매개로 세계적인 확산과 냉전텍스트로서의 권위와 영향력이 확대되기에 이른다. 따라서《실패한 신》은 문화냉전의 세계적 연쇄와 냉전지식의 동아시아적 및 한국적 변용을 동시에 파악할 수 있는 보기 드문 텍스트라고 할 수 있다.
이 같은 문제의식 아래 본고는 《실패한 신》의 한국 번역 및 수용의 양상을 연대기적으로 살피는 가운데 네 가지 지점을 해명하는데 주력했다. 첫째, 문화냉전의 세계적 연쇄와 냉전지식의 한국적 변용에 대해 탐색이다. 국제적 냉전문화네트워크와의 연계하에 이루어진 한국에서의 번역메커니즘과 복수의 번역주체가 변용・전유한 냉전정치성을 파악함으로써 한국 냉전문화사의 특수성을 규명하고자 했다. 둘째, 《실패한 신》의 번역 실제에 대한 총체적 정리이다. 셋째, 전향 의제의 냉전정치성과 사상사적・문화사적 영향이다. 넷째, 동아시아 문화냉전의 기원에 대한 비교사적 고찰이다. 큰 시차 없이 한국 및 동아시아 국가들에 번역되는 특징에 주목하여 그 수용의 공통점과 차이를 비교사적으로 분석하여 냉전아시아 문화냉전의 기원을 탐색하고자 했다.
《실패한 신》의 한국 수용은 냉전분단체제의 거시적인 규율 속에 반공산주의의 정당성을 확증해주는 텍스트로, 체제옹호를 뒷받침해주는 대내외 심리전텍스트로 두루 활용되는 기조가 유지되었다. 좌익에 남아 있던 공산주의전력자의 증언으로만 구성한 《실패한 신》의 텍스트성과 그로 인해 출간 당시 《실패한 신》 및 저자들이 좌우 진영 모두로부터 의혹과 비판을 받은 바 있는 이 냉전텍스트가 한국에서는 반공산주의텍스트로 비교적 단일한 의미 변용을 거쳐 수용되었고, 그것이 오랫동안 지배적으로 관철된 특징이 있다. 포도레츠가 특히 경계했던 제3세계에서 이 텍스트의 반공주의 지식으로서의 불충분성과 반소주의의 정치적 미흡함이 한국에서는 거의 존재하지 않았다고 할 수 있다. 이는 《실패한 신》의 기획 의도가 한국에서 가장 실질적으로 구현되었다는 것을 말해준다. 그것이 가능했던 원천은 냉전분단체제하 사상 전향이 내포한 강력한 이데올로기적 구속성 때문이었다. 이 같은 수용은 지배 권력의 통치술로 확대 강화된 면이 컸으나 한국사회에 광범하게 정착된 냉전멘털리티가 이에 못지않게 작용했다는 판단이다. 특히 공산주의의 실제 체험은 《실패한 신》의 냉전텍스트성과 심리전 효과를 증폭시키는 주된 바탕이었다. 이는 동아시아국가들의 번역 수용과도 구별되는 지점이기도 하다. 《실패한 신》은 문화냉전텍스트로 규정되어 전파되었으나 그 내용과 영향을 고려하면 러시아혁명 이후 20세기 세계사를 포괄한 지성사의 텍스트라고 할 수 있다. 공산주의전력자들의 사상적 고뇌와 지적 유토피아니즘에 대한 복원이라는 관점에서 《실패한 신》의 재독이 필요한 시점이다.
주제어 : 《실패한 신》, 냉전, 문화냉전, 번역, 수용, 문화자유회의, 미국 중앙정보국, 냉전정치성, 변용, 전향, 동아시아, 고백, 장기지속성, 재맥락화, 소비에트, 심리전, 선전, 냉전지식, 소프트파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