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문초록
본고는 정지용의 후기 시문학에 나타난 기독교적 세계관의 독창적 면모를 밝히고자 하였다. 흔히 ‘정신주의’라 불리는 정지용의 시론에는 미의 종교성에 대한 확신이 밑바탕에 깔려있다. 시는 무엇보다 절대자와 자아의 관계를 궁극적 관심의 대상으로 삼아야 하며 시인은 유한한 사물을 통하여 무한을 발견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 시적 정신주의의 골자이다. 주목해야 하는 것은 이것이 미적 사유를 넘어 신앙에 대한 성찰과 깊이 관련된 것처럼 보인다는 점이다. 정신주의는 고난을 인내하며 존재의 유한성을 묵묵히 받아들이는 ‘순종’을 통해서만 무한한 존재와의 만남이 이루어질 수 있다는 사유를 내재한다. 정지용의 후기 시문학을 대표하는 「백록담」, 「장수산」 또한 그러한 성찰을 시적 주제로 삼고 있다. 즉, 후기 시문학에서 정지용은 고난을 회피하거나 초월해버리지 않고, 그것을 값싼 위로나 거짓 충만함으로 망각하려는 시도마저 거부하고, 묵묵히 순응하고자 하는 태도의 가치를 탐색한다. 이른바 견딤의 정신은 피조물로서 자신의 무기력함을 인정하며, 고난을 온전히 받아들임으로써 무한에 이르고자 하는 ‘순종’의 자세이다. 신이 부재하는 당대의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 존재론적인 허무와 담담히 마주하고자 하는 저 종교적 태도야말로 본고는 정지용이 후기 시문학을 개진하는 동안 고심했던 신학적 주제였다고 생각한다.
주제어 : 정지용, 후기 시, 기독교적 사유, 순종, 견딤, 신학적 주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