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문초록
조선후기에는 잡세 부과와 수취에 관련된 조직과 재원을 民庫라 했다. 지방 군현은 계를 활용해 민고를 운영했다. 군현에서 먼저 화포계, 망결계 등과 같이 개별 민고 이름을 딴 계를 설립하고, 戶數를 참작하여 계전[민고전]을 예하의 면에 분배하여 면 단위 계를 창설하도록 했다. 그리고 개별 면은 다시 그 계전을 예하의 동에 분배하고 동 단위 계를 창설하도록 했다. 그러면 동은 매년 분배금[원금]의 30~60%에 해당하는 이자를 부세명목으로 면에 상납하고, 면은 그 돈을 모아 군현에 상납했다.
민고는 高利의 식리활동에 의거해 운영되었기 때문에 장기간 지속되기 어려웠다. 크고 작은 가뭄이 자주 들었기 때문이다. 흉년이 든 해 초근목피로 겨우 연명하는 농민들에게 민고전의 이자를 수취하는 것은 생각조차 하기 어려운 일이다. 활발한 인구이동도 장기간에 걸친 식리활동을 어렵게 하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민고전을 분배받은 사람들이 야반도주하기가 일쑤였다. 짧은 평균수명도 장기간에 걸친 식리활동을 어렵게 하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민고전을 분배받은 사람들이 갑자기 사망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마을 단위에서 逋欠이 빈번하게 발생했다.
민고만 재화를 분배하고 부세명목으로 그 이자를 수취한 것이 아니다. 조선후기 환곡 운영원리도 식리다. 재화를 나누어준 다음 이자를 부세명목으로 수취하는 제도는 왕토사상과 관련 있었다. 전결세는 왕의 토지를 경작한 대가로 지불하는 사용료였기 때문에 막대한 비용이 들어가는 양전을 굳이 할 필요가 없었다. 민고와 환곡처럼 사용[경작]하는 사람[戶]에게 전결세를 부과하면 되는 것이다. 즉 호수를 파악하면 결부수는 자연스럽게 계산되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조선후기 호에 부과되는 세금[민고, 환곡]과 농지에 부과되는 세금[전결세]은 모두 왕의 물건을 활용한 사람들이 내는 사용료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다시 말해 조선시대에는 戶稅와 田結稅를 거두기 위해서는 인민들이 활용할 수 있는 재화를 미리 나누어주어야 했던 것이다.
주제어 : 민고, 계, 식리, 포흠, 왕토사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