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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과소개

연혁

1946년 사학과 창설, 1950년대 기초를 다지다

성균관대 사학과는 1946년 9월 25일에 개학한 성균관대학의 문학부 산하 세 과 중 하나로 개설되었다. 개설 당시에는 전임 교수가 없었으나 1947년부터 전임교수로 한국사의 임경일(林耕一) 교수가 부임했으며 1949년부터 동양사의 채희순(蔡羲順) 교수가 부임해 사학과로서의 진영을 갖추어나갔다. 1953년에는 성균관대학이 종합대학인 성균관대학교로 승격되면서 문리과대학 문학부 사학과로 학제가 개편되었으며 동시에 대학원 석사과정이 설치되었다. 이와 같이 제도가 정비되는 한편 1952년에 채희순 교수가 서울대 사범대로 이동하고 또 1953년에 임경일 교수가 사임함에 따라 1951년부터 겸무 교수(1953년부터 전임대우교수로 변경)로 부임한 한국사의 신석호(申奭鎬) 교수가 1953년부터 1955년까지 주임교수를 맡게 되는 과도기적인 양상을 보였다.

 

1954년에 서양사의 김하구(金河龜) 교수가 전임으로 부임해 1955년부터 1960년까지 주임교수를 맡으면서 사학과는 다시 제 궤도에 오르게 되었다. 50년대 중반에는 교수의 절대적 부족으로 신석호 교수를 비롯해 서양사의 김성식(金成植) 교수와 안정모(安貞模) 교수, 동양사의 정병학(鄭秉學) 교수 등이 전임대우교수로 재직했다. 하지만 1955년부터는 동양사의 이재호(李載琥) 교수를 시작으로 1956년에 한국사의 임창순(任昌淳) 교수, 1957년에 서양사의 염은현(廉殷鉉) 교수, 1958년에 동양사의 이공범(李公範) 교수, 1960년에 한국사의 백종기(白鍾基) 교수와 동양사의 홍순창(洪淳昶) 교수가 각각 부임해 후진 양성에 정성을 쏟았으며, 1956년에는 나중에 사학과 교수가 될 민병하(閔丙河)가 사학과에서 첫 석사학위를 받기도 했다.

 

 

1960년대, 사회적 진통을 겪고 성장하다

이렇게 순조롭게 사학과는 성장했지만 격동적인 정치적인 상황과 무관할 수는 없었다. 1960년 부정선거를 계기로 발발한 4.19혁명에서 학생들이 주요한 역할을 했지만 교수들 또한 가만히 있지는 않았다. 4월 25일에는 교수들이 데모를 해 이승만 하야의 직접적인 계기가 되기도 했는데, 이 교수단 데모를 주도하며 '이승만 하야'라는 구호를 넣도록 한 인물이 다름 아닌 임창순 교수였다. 임창순 교수는 4.19혁명 이후 통일운동이 고조되는 가운데 결성된 민족자주통일협의회 산하 통일방안심의위원회에도 위원으로 참여해 사회적인 과제에 적극적으로 대응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1961년에 5.16군사정변이 일어나 통일운동이 탄압을 받게 되자 함께 행동하던 홍순창 교수와 더불어 '권고사직'을 당하게 되었다. 우리 사학과가 간직해야 할 자랑스럽고도 아픈 역사이다. 1963년에는 사학과에서 첫 석사학위를 받은 한국사의 민병하 교수와 동양사의 김재만(金在滿) 교수가 부임했으며 1964년에는 동양사의 신연철(申延澈) 교수가 부임했다. 1965년에 학교재단이 바뀌어 적극적으로 저명한 교수 영입에 나선 결과 1966년에는 한국사의 이병도(李丙燾) 교수, 신석호 교수, 조좌호(曺佐鎬) 교수, 그리고 서양사의 박성수(朴成壽) 교수가 부임하게 되었다. 1968년에는 한국사의 유홍렬(柳洪烈) 교수가 부임해 60년대 말에는 10명이 넘는 교수가 재직하게 되었다. 1965년에는 대학원 박사과정이 설치되었으며 학술지 『成大史林』을 발간하기 시작해 이 시기에 명실상부한 사학과로 성장하게 되었다.

 

 

1970년대~1980년대, 명실상부한 사학과, 궤도에 오르다

1977년에 서양사의 김진경(金鎭京) 교수, 1980년에 서양사의 노명식(盧明植) 교수가 부임했으며 1981년에는 고고학의손병헌(孫秉憲) 교수가 부임했다. 또 1986년에 서양사의 정현백(鄭鉉栢) 교수, 1988년에 한국사의 성대경(成大慶) 교수가 부임했는데, 성균관대에서 학사부터 박사까지 모두 마친 성대경 교수의 부임은 사학과가 이제 재생산 궤도에 올랐음을 보여주는 일이었다.

 

 

1990년대, 괄목상대한 발전을 이루다

90년대 들어서면서 사학과는 크게 성장하기 시작한다. 1991년에는 한국사의 이장희(李章熙) 교수, 서중석(徐仲錫) 교수, 김영하(金瑛河) 교수가 부임했는데, 한국 현대사 국내 박사 1호인 서중석 교수의 부임은 국내 사학과 최초로 한국 현대사를 담당하는 교수가 임용되었다는 의미에서 획기적인 일이었다. 이어 1994년에 동양사의 박기수(朴基水) 교수, 1998년에 동양사의 하원수(河元洙) 교수가 부임했다. 1998년에는 사학과와 역사교육과가 통합됨으로써 역사교육과 교수로 재직하던 한국사의 조동원(趙東元) 교수와 신해순(申解淳) 교수, 동양사의 구태훈(具兌勳) 교수, 서양사의 김동순(金東淳) 교수와 김택현(金澤賢) 교수가 사학과 소속으로 바뀜에 따라 사학과는 또 다시 10명이 넘는 교수들이 재직하는 대규모 과로 성장하게 되었다. 80년대 후반부터 본격적으로 배출되기 시작한 박사학위 수여자도 꾸준히 늘어나 90년대에는 연평균 4명의 박사를 배출했으며 특히 한국사 분야에서는 사회주의운동에 대한 선구적인 연구 성과를 생산해 학계 발전에 크게 공헌했다.

 

 

2000년대 이후, 역사학과 인재양성에 새로운 지평을 열다

2000년대 들어서면서도 사학과는 성장을 계속하고 있다. 1999년부터 교육부 주관 아래 시작된 세계수준의 대학원 육성 사업인(1단계) BK21(1999-2005)에 사학과 사업단이 선정된 것을 시작으로 2단계 BK21(2006-2013)에도 사학과 사업단이 선정되었으며 2013년부터 시작된 BK21플러스에도 사학과 사업단이 선정되어 대학원생을 위한 교육환경이 크게 향상되었다. 또한 이에 발맞추어 2004년에 한국사의 임경석(林京錫) 교수, 2012년에 한국사의 박재우(朴宰佑) 교수, 2013년에 한국사의 조성산(趙成山) 교수, 2015년 9월 한국사의 오제연(吳瑅淵) 교수, 2019년 3월 서양사의 이상동(李相東) 교수, 2019년 9월 동양사의 최자명(崔子明) 교수와 서양사의 김민철(金珉徹) 교수, 그리고 2021년 3월 한국사의 한영화(韓鈴和) 교수가 부임해 교수진도 한결 젊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