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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향신문 2023.04.27] [김범준의 옆집물리학] 생명의 장엄함을 보며 떠올린, ‘변이’의 힘
- 경향신문 2023년 4월 27일에 실린 기사 발췌 출처: https://www.khan.co.kr/opinion/column/article/202304270300015 진화론을 ‘유전적 변이의 차별적 선택’으로 줄여 말할 수 있다. 변이를 가져 부모와 다른 자식 중 일부는 성공적으로 생존하여 같은 변이를 가진 손자손녀들을 만들어낸다. 살아남은 개체만 다음 세대의 후손을 남기니 무척 당연한 얘기다. 유전되지 않는 변이는 진화에 아무런 영향을 미칠 수 없으니, ‘변이’ 앞 ‘유전적’도 중요하다. 다윈 진화론의 얼개를 이해하고 나면 이처럼 자명한 진실이 발견될 때까지 그처럼 오랜 시간이 걸렸다는 것이 오히려 더 신기하게 느껴진다. 김범준 성균관대 물리학과 교수 진화의 메커니즘이 작동하려면 변이는 필수다. 변이가 전혀 없어 똑같은 후손들만이 태어나는 생물종은 갑작스러운 환경 변화로 멸종할 수도 있다. 따라서 변이를 만들어낼 수 있는 생물종이 변화하는 환경에서 생존할 가능성이 더 크게 된다. 하지만 변이의 확률이 너무 커도 문제다. 우연적 변이 대부분은 생존에 도움이 되지 않으므로, 낳아도 어차피 생존하기 어려운 자손을 소중한 생물학적 자원을 동원해 과도하게 만들어내는 비효율이 발생한다. 유전적 변이의 확률이 너무 작으면 멸종으로 이어지고, 확률이 너무 크면 낭비가 발생한다. 변이는 진화의 분명한 원인이자 자명한 결과다. 자식 하나의 크기가 아주 작아서 별 어려움 없이 수많은 자식세대 개체를 만들어낼 수 있는 종은 높은 변이 확률이 문제가 되지 않을 수 있다. 1000마리 자식 가운데 딱 10마리만 생존을 해도, 후손들도 같은 방식으로 대를 이어가면 몇 세대만 지나도 엄청난 숫자가 된다. 높은 변이 확률은 고위험 분산투자를 닮았다. 대부분의 투자는 쫄딱 망해 아무런 수익이 없지만, 극히 일부의 투자가 성공을 하면 엄청난 수익으로 돌아오는 셈이다. 나와 다른 유전형을 가진 자손을 변이로 만들어내고 이 중 성공적인 변이를 가진 자손이 대를 이어가는 진화의 메커니즘 자체도 이처럼 진화가 만들어낸 것이다. 진화의 메커니즘을 따르지 않는 생명체는 진화를 통해 안정적으로 유지될 수 없으니, 진화가 진화를 스스로 만들어낸 셈이다. 우주에 우리 아닌 다른 생명이 과연 존재하는지는 여전히 오리, 아니 오광년(光年)무중이지만, 생명이 있는 모든 곳에서는 진화의 메커니즘이 자연 발생할 수밖에 없다. 물리학은 우주적 규모의 자연법칙의 보편성을, 생물학은 우주적 규모의 진화의 보편성을 말한다. 우주 어디서나 같은 빛의 속도와 생명의 진화를 스스로 발견해낸 우리 인류는 드디어 우주적 규모의 물리학 학회와 생물학 학회에 참석할 자격을 얻었다고나 할까. 자연에서 진화를 배운 인간은 이를 과학에 이용하기도 한다. 유전 알고리즘이라고 불리는 재밌는 방법도 있다. 인터넷에서 ‘유전 알고리즘 그네타기’로 검색해 볼 수 있는 동영상이 있다. 마구잡이로 움직여 그네를 잘 타지 못하는 개체들로 0세대 집단을 구성하고, 조금이라도 더 잘 타는 개체들만으로 다음 세대를 생성한다. 자식 세대의 개체를 생성할 때, 유성 생식하는 현실 생명처럼 유전자의 변이와 조합도 허락한다. 이러한 유전 알고리즘을 따라 여러 세대가 이어지면, 그네를 몹시 잘 타는 개체들이 자연스럽게 출현하게 된다. 어떻게 그네를 타야 하는지를 가르쳐 주지 않아도, 알고리즘으로 구현된 진화의 힘만으로 그네를 잘 타는 인공 개체들이 결국 생성된다. 진화는 놀라운 시계를 만들어내는 인간 시계 장인을 닮았지만, 다른 점도 많다. 눈이 멀어 엉뚱한 조합으로 수없이 많은, 작동하지 못하는 시계를 만들어내지만, 엄청나게 긴 시간이 허락되어 있다는 점이다. 진화는 엄청나게 긴 시간을 수명으로 가진 눈먼 시계공이다. 동양 고전 <대학>에 은나라 탕왕이 매일 스스로 다짐했던 글귀가 나온다. 바로, “구일신 일일신 우일신(苟日新 日日新 又日新)”이다. 하루하루 새롭게 하는 것을 재귀적으로 다시 반복하는 것은 모든 생명이 계속 이어가는 진화의 모습이기도 하다. 진화가 만들어낸 온갖 생명의 장엄한 아름다움을 보며 변이의 힘을 떠올린다. 우리 모두는 제자리에 머물지 않고 끊임없이 다른 곳으로 숨 가쁘게 달려갔던 선조들의 후예다. 4월 중순에 피어 꽃말이 ‘중간고사’라고 농담했던 벚꽃은 올해는 3월 말에 피었다. 때 이른 개화를 보며 환경의 변화를 절감한다. 환경이 변하면 우리 삶의 방식도 바뀌어야 한다. 기나긴 세월 우리 인간을 만들어낸 진화의 과정에서 스스로를 바꾸지 않으면서 생존의 헛된 꿈을 꾼 생명은 없다. 삶의 방식의 변화는 미래의 여전한 생존을 위한 필요조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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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2023-0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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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향신문 2023.03.30] [김범준의 옆집물리학] 물리학의 다음과 ‘다음 소희’는 지금이 정한다
- 경향신문 2023년 3월 30일에 실린 기사 발췌 출처: https://www.khan.co.kr/opinion/column/article/202303300300005 길에서 친구를 우연히 만났다. 잠깐 인사를 나누고 헤어지자니 아쉬워 친구가 다음에 밥 한번 같이 먹자고 말한다. ‘다음’이 정확히 언제냐고 묻지는 말자. 갑자기 말 더듬으며 당황하는 친구 얼굴을 보게 될 테니. 그냥 “그래, 다음에 보자”가 적당하다. 김범준 성균관대 물리학과 교수 우리는 시간의 순서로 일어나는 사건 중 현재를 기준으로 미래의 정해지지 않은 시점을 ‘다음’이라 할 때가 많다. 다음은 언제가 아니다. 다음은 시간의 화살을 따라 늘 미래를 향한다. 그 순간이 오기 전에 먼저(pre-) 말하는(dict) 것이 예측(predict)이어서, 물리학은 다음을 지금 말하는 예측에 관심이 많다. 고전역학에서 지금 이 순간의 물체 위치와 속도를 알면 다음 순간의 물체 위치와 속도는 딱 하나로 정해진다. 지금의 상태가 다음의 상태를 결정하는 것은 양자역학도 마찬가지다. 다음의 상태는 결정론적으로 지금 정해지지만 주어진 양자 상태에 대한 측정과 관찰의 결과가 확률로 주어질 뿐이다. 물리학의 다음은 지금이 정한다. 뉴턴의 고전역학에서는 물체에 주어지는 지금의 힘이 지금의 가속도(加速度)를 결정한다. 지금의 가속도를 알면 다음의 속도를 알고, 지금의 속도를 알면 다음의 위치를 안다. 지금으로부터 바로 다음을 알아내는 과정을 시간 축을 따라 한 단계 한 단계 조금씩 계속 이어가면 아무리 먼 미래라도 지금 예측할 수 있게 된다. 고전역학으로 이해하는 운동 중 가장 간단한 것이 물체에 작용하는 힘이 없는 경우다. 힘이 없으면 가속도가 없고, 가속도가 0이면 속도(速度)에 더해지는(加) 것이 없어 다음의 속도는 지금의 속도와 같다. 물체는 지금의 속도와 정확히 같은(等) 속도로 계속 움직이는 등속(等速) 운동을 하게 된다. 물리학에서 속도는 종이 위에 연필로 그린 화살표처럼 방향과 크기를 함께 갖는 벡터다. 등속으로 운동해 속도가 늘 같다는 말은 물체가 움직이는 빠르기뿐 아니라 움직이는 방향도 변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등속 운동을 하는 물체는 늘 속도가 같아서 시간이 지나도 늘 같은 빠르기로, 그리고 늘 같은 방향인 직선을 따라 움직인다. 힘이 없다면 다음은 지금과 늘 같다. 고전역학의 다음을 지금과 다르게 하는 것이 물체에 작용하는 힘이다. 가벼운 물체의 다음 경로를 바꾸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질량이 작은 물체는 약한 힘에도 크게 반응해 커다란 가속도를 만들어 속도를 크게 바꾸고 미래의 위치도 크게 달라진다. 하지만 질량이 커 관성도 큰 물체는 지금과 다른 다음을 위해서 큰 힘이 필요하다. 물리학뿐 아니다. 사회와 시대에도 관성이 있다. “원래 늘 그랬던 것인데 뭘 유난하게”의 마음가짐이 사회의 관성을 유지하는 원동력이다. 세상에 “원래 그랬던 것이어서 다음에도 늘 그럴 것”은 없다. 하루가 멀다 하고 경험하고 목격했던 학교에서의 체벌은 이제 먼 과거의 얘기고, 도대체 여자가 무슨 법대를 가고 의대를 가냐는 그릇된 생각도 이제 거의 사라졌다. 절대로 바뀔 수 없는 것은 세상에 없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다. 눈 질끈 감으면 다음은 지금과 같아서, 다음을 바꾸려면 지금 바꿔야 한다. 정주리 감독의 영화 <다음 소희>를 인상 깊게 관람했다. 최준영 작가의 인문학공동체 수원 ‘책고집’에서 열린 감독과의 대화시간에도 참석했다. <다음 소희>는 현장실습을 나간 한 특성화고 학생 소희의 이야기다. 소희의 안타까움에 관객이 절절히 공감할 수 있는 영화지만, 영화 속 여러 가해자는 다른 의미에서는 피해자이기도 하다. 소희의 자살 이전 자취를 따라 범인(犯人)을 쫓는 형사가 결국 마주친 이들은 숱한 범인(凡人)이었다. 엄청난 관성을 가진 거대한 사회 구조는 가해자가 다시 피해자가 되는 계층구조의 연쇄 사슬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 사슬의 가장 끝단에 소희가 있었다. 영화 제목 <다음 소희>는, 세상에 둘도 없는 유일한 존재인 소희의 안타까운 죽음 뒤에도 이어질 다음 소희를 일반명사로 말한다. 힘이 존재해야 지금과 다른 다음이 만들어지는 물리학을 떠올리며, 모두의 힘이 함께 모여 달라질, 다음 소희가 사라진 소희 다음을 소망한다. ‘다음에도’를 ‘다음에는’으로, 그리고 ‘결코 다시는’으로 바꾸는 것은 여럿의 부릅뜬 눈이다. 세월호·이태원 참사를 겪고 <다음 소희>를 보면서 ‘결코 다시는’을 애써 떠올린다. 다음에는 달라질 것이라 누가 말하면 다음이 도대체 언제냐고 따져 물을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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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2023-0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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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반] 물리학과 한정훈 교수, <물질의 재발견> 출판
- 금속, 자석, 유리처럼 너무나 흔하고 평범한 물질에서부터 많이 들어봤지만 설명하기는 어려운 반도체와 부도체, 아직 해결되지 못한 물리학의 두 난제 초전도체와 암흑물질까지, 11가지 물질을 통해 물리학의 최전선을 살펴볼 수 있는 책이다. 각 분야 국내 최고의 물리학자 11명이 뜻을 모아 물질 발견과 발명의 역사, 그리고 최첨단 물질물리학과 산업의 이모저모를 들려준다. 과학의 역사는 같은 이름 아래 다른 모습으로 재발견된 물질의 사례로 넘쳐난다. 이 책에 담긴 그 사례들과 저자 자신들의 연구 이야기를 읽으며 독자는 ‘물질’에 대한 전반적인 이해를 높일 수 있을 것이다. 더 나아가 물리학자들은 실제로 어떻게 연구하는지, 좋은 질문이란 어떤 것인지, 남아 있는 질문들은 무엇인지에 대한 통찰도 엿볼 수 있다. 물질물리학에 관심이 있는 학생들은 물론 현대 물질세계의 근간을 이루고 있는 ‘물질’에 대한 교양을 쌓고 싶은 사람이라면 반드시 읽어야 할 필독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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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2023-0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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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향신문 2022.12.8] [김범준의 옆집물리학] 전파라 좋은 것도, 전자파라 나쁜 것도 아니다
- 경향신문 2022년 12월 8일에 실린 기사 발췌 출처: https://www.khan.co.kr/opinion/column/article/202212080300015 방송국 전파로 라디오를 들으며 전자파 유해성 기사를 읽는다. 음악을 듣게 해주는 전파는 고맙지만, 전자파는 왠지 피하고 싶다. 전파는 좋은 것이고, 전자파는 나쁜 것일까? 김범준 성균관대 물리학과 교수 전자파는 표준 용어가 아니어서 전자기파로 부르는 것이 맞다. 전파도 좀 이상하다. 자연에는 전파(電波)와 자파(磁波)가 따로 없어, 둘은 서로를 만들어내며 전자기파로 진행하기 때문이다. 영어로 radio wave인 전파를 직역해 라디오파라고 하는 것이 더 좋았을 것 같다. 전기만의 파동으로 오해하는 이는 없고, 이미 널리 쓰여 이제 와서 바꾸기는 어렵겠지만 말이다. 물리학은 자연을 객관적인 실체로 기술하고자 하지만. 어쨌든 인간은 인간의 언어로 자연을 기술한다. 전기(electricity)는 호박을 뜻하는 고대 그리스어 elecktron이 어원이다. 보석의 일종인 호박을 천으로 문지르면 곁에 놓인 작은 물체를 잡아당기는 현상이 전기의 어원이다. 자기(magnetism)는 자석으로 쓰이는 자철광의 산지 고대의 마그네시아(Magnesia)가 어원이다. 조선시대 참료의 시에 침개상투희유연(針芥相投喜有緣)의 글귀가 있다. 침개상투는 “바늘(針)이 자석에 이끌리고, 작은 겨자씨(芥)가 호박에 이끌리듯 서로 마음을 나눈 친구”를 뜻하는 고전 글귀에서 따온 얘기(정민의 <우리 한시 삼백선: 7언 절구 편>)라 하니, 동서양을 막론하고 전기와 자기는 오래전부터 알려진 자연현상이다. 대학생 때, 같은 방향으로 전류가 흐르는 두 도선 사이에는 서로 잡아당기는 자기력이 생긴다는 것을 배우고 고개를 갸웃한 기억이 있다. 첫 번째 도선에서 움직이고 있는 전자가 보면 두 번째 도선의 전자는 나란히 같이 움직여 정지한 것으로 보인다. 둘 사이에는 서로 밀어내는 전기력이 작용할 것 같은데, 왜 두 도선은 서로 잡아당길까? 금속 도선 안에서 양전하를 띤 원자핵들은 제자리에 가만히 머물러 있고 전자들은 도선 안을 자유롭게 움직인다. 첫 번째 도선에서 움직이는 전자가 두 번째 도선의 원자핵을 보면 어떻게 보일까? 아인슈타인의 특수상대론은 정지한 관찰자가 움직이는 물체를 보면 운동 방향으로 길이가 줄어든 모습을 본다는 것을 알려준다. 첫 번째 도선의 전자가 보면 두 번째 도선의 양전하를 띤 원자핵들은 더 조밀하게 배열되어 더 높은 양전하 밀도를 가진 것으로 보이게 된다. 한편, 두 번째 도선의 전자들은 첫 번째 도선의 전자와 함께 나란히 같은 속력으로 움직여 정지해 있는 것으로 보여서 두 번째 도선의 음전하 밀도에는 길이 수축 효과가 없다. 결국, 첫 번째 도선의 전자가 힐끗 옆 도선을 보면 그곳의 양전하 밀도가 음전하 밀도보다 더 커보이게 되고, 두 도선 사이에는 서로 잡아당기는 힘이 존재하게 된다. 전류가 흐르는 두 도선 사이에 작용하는 자기력은 전하 사이의 전기력에 특수상대론의 길이 수축 효과를 적용한 결과다. 전파는 라디오파라고 부르는 것이 더 나아보이고, 전자파 대신 전자기파로 부르는 것이 맞다. 주변 물리학자들이 더 아쉬워하는 것이 속도와 속력이다. 중력, 전자기력처럼 힘력(力)이 들어 있는 용어 중에는 크기와 방향을 모두 가진 벡터가 많다. 한편, ‘온도’나 ‘습도’를 보면 알 수 있듯이, ‘도’자를 돌림자로 갖는 양들은 크기는 있지만 방향을 갖지 않는 스칼라가 많다. 내가 동쪽 방향으로 힘을 주어 물체를 밀 수는 있어도 온도를 동쪽 방향으로 바꿀 수는 없는 일이다. 다른 물리량과 비교하면, 속력을 벡터로 그리고 속력의 크기를 속도로 부르는 것이 더 자연스러워 보이지만 우리나라에서는 현재 거꾸로다. 바꾸자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이미 정착되어 널리 이용되는 과학의 용어에도 맥락과 역사가 담겨 있어 용어의 갑작스러운 변경은 큰 혼란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전파라고 좋은 것도, 전자파라고 나쁜 것도 아니다. 전자파는 학술용어가 아니어서 전자기파라고 부르는 것이 맞고, 전파는 방송에 사용하는 파장이 긴 전자기파를 일컬을 뿐이다. 어쨌든 우리가 특정 용어를 서로 다른 구체적인 맥락에서 사용하는 것이 흐름으로 이어지면 과학의 개념에 가치의 판단을 담게 되는 것은 늘 주의할 일이다. 고립계의 엔트로피가 늘어난다는 사실로부터 엔트로피는 나쁜 것이니 줄여야 한다는 당위의 주장을 이끌어낼 수는 없는 것처럼 말이다. 과학은 자연을 말하지만 인간의 언어로 말한다. 과학 용어가 담긴 이야기를 들을 때면 그 안에 담긴 사실과 가치를 늘 저울질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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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2022-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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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향신문 2022.11.10] [김범준의 옆집물리학] 때로는 막고 때로는 돕는, 물리학의 간섭
- 경향신문 2022년 11월 10일에 실린 기사 발췌 출처: https://www.khan.co.kr/opinion/column/article/202211100300005 내 일에 간섭하지 마! 무언가를 하려는데 다른 이가 막아설 때 우리가 하는 말이다. 우리 삶에서 간섭은 이처럼 방해나 훼방의 뜻을 가질 때가 많다. 하지만 물리학의 간섭은 이와 달라, 서로 만나 줄어드는 소멸(destructive)간섭도, 만나서 커지는 보강(constructive)간섭도 있다. 물리학의 간섭은 때로는 막고 때로는 돕는다. 김범준 성균관대 물리학과 교수 빛과 소리를 포함한 모든 파동은 진행하며 서로 간섭한다. 긴 줄의 양 끝을 두 사람이 나눠 잡고 시간을 맞춰 동시에 위아래로 휙 움직이자. 양 끝에서 만들어진 두 파동은 반대 방향으로 진행해 한가운데에서 만나고, 그곳에서 줄은 위아래로 큰 폭으로 떨린다. 이처럼 결이 맞은 두 파동이 더해져 진폭이 늘어나는 것이 보강간섭이다. 두 파동이 만나 이루는 합성 파동의 진폭이 0이 될 수도 있다. 한 사람이 줄 끝을 위아래로 휙 움직여 파동을 만드는 바로 그 순간, 다른 쪽 끝을 잡고 있는 사람은 거꾸로 줄을 아래위로 휙 움직여 파동을 만들 때 그렇다. 위아래가 뒤집힌 모습의 두 파동이 진행해 가운데에서 만나면 덧셈이 아닌 뺄셈이 되어 그곳에서 진폭이 0이 되는 소멸간섭이 일어난다. 결이 딱 맞는 둘이 만나면 늘어나지만, 결 맞지 않아 많이 다른 둘이 만나면 거꾸로 줄어든다. 반대 방향으로 진행해 가운데서 만난 두 파동은 잠깐의 만남과 간섭 후에 제 갈 길을 계속 이어간다는 것도 중요하다. 이처럼 파동은 만남을 쉬이 잊어, 시간이 지난 둘의 만남은 아무런 흔적을 남기지 않는다. 빛은 입자일까. 파동일까? 한눈팔지 않고 곧게 달려가는 빛의 직진과 빛의 반사는 빛을 입자로 간주한 페르마의 최소시간 원리로 설명할 수 있다. 또, 매질의 경계에서 일어나는 빛의 굴절은 물에 빠진 사람을 구하러 모래사장 위를 달리다 바다에 뛰어들어 헤엄치는 해변 구조요원을 닮아, 이것도 빛을 입자로 보아 설명할 수 있다. 빛의 입자설을 강하게 주장한 사람이 바로 고전역학을 완성한 뉴턴이다. 그의 권위로 빛의 입자설이 힘을 얻고 있던 17세기 말, 빛의 파동설이 등장해 점점 세를 불리게 되었다. 빛이 마치 당구공과 같은 입자라면 둘이 만나 사라질 리 없다. 하지만 두 빛은 서로를 상쇄해 소멸간섭을 보이기도 한다. 소멸간섭은 빛을 입자가 아닌 파동으로 간주해야 이해가 쉽다. 당대의 물리학자들이 빛의 입자설에 고개를 갸웃한 이유는 더 있다. 정말로 빛이 크기가 있는 입자라면, 당신의 얼굴에서 반사해 내 눈으로 진행하는 빛의 입자는 거꾸로 내 얼굴에서 반사해 당신의 눈으로 향하는 빛의 입자와 도중에 부딪쳐 방향을 바꿀 수 있기 때문이다. 빛이 정말로 크기를 가진 입자라면 우리 둘은 서로를 동시에 또렷이 마주 볼 수 없다. 소리도 마찬가지다. 소리가 입자의 운동이라면 어떤 일이 생길까? 내 입에서 떠난 소리의 입자가 당신의 입에서 나를 향해 다가오는 소리의 입자와 만나면 방향을 바꾸거나 속도가 줄어, 동시에 말하는 둘은 서로의 말을 제대로 들을 수 없게 된다. 소리가 입자의 운동이라면, “밥 먹었니? 오버” “응, 먹었어. 오버”처럼, 한 번에 한 사람만 말할 수 있는 무전기처럼 대화가 이어질 수밖에. 둘이 마주보고 소곤소곤 대화를 연이어 나눌 때 물리학의 파동을 떠올릴 일이다. 소리와 빛은 이처럼 파동으로 존재해, 각각 반대 방향으로 진행한 두 파동은 두 사람 사이의 공간 어딘가에서 만나 간섭한 후 곧이어 제 갈 길을 계속 이어간다. 서로를 마주 바라보며 함께 속삭일 수 있는 이유는 빛과 소리가 파동이기 때문이다. 정겨운 시선과 속 깊은 대화를 나누는 두 사람의 만남은 각자의 삶에 흔적을 남기지만, 둘의 경이로운 만남은 만남을 쉬이 잊는 파동에 빚지고 있는 셈이다. 물리학뿐 아니라 우리 삶에서도 간섭이 꼭 부정적인 것만은 아닐 수 있다. 내 생각과 다른 누군가의 말을 들을 때, 그의 목소리도 결국 물리학의 파동임을 떠올릴 일이다. 쇠귀에 경 읽듯, 투명 매질을 통과하는 빛처럼, 흔적 없이 마음을 스쳐지나갈 수도 있지만, 당신의 간곡한 부탁에 내 마음의 결을 맞추면 안 될 일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하자. 막는 간섭도, 돕는 간섭도 있다. 어떤 간섭은 막기도 한다. 끔찍한 재난으로 결 맞아 함께 슬픈 모두의 마음을 돌아보며, 재난을 미리 막을 수 있었던 간섭의 부재에 분노한다. 결 맞은 마음 모아 더 커진 목소리로, 다시는 이런 일이 없게 함께 힘을 모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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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2022-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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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물리학과 카르스텐 로트 교수 참여 국제공동연구단, 활동은하에서 방출되는 중성미자의 증거 발견
- 물리학과 카르스텐 로트 교수 참여 국제공동연구단, 활동은하에서 방출되는 중성미자의 증거 발견 물리학과 카르스텐 로트 교수 연구팀이 참여하고 있는 국제공동연구단이 먼 거리에 있는 활동은하에서 방출된 고에너지 중성미자의 증거를 최초로 발견했다. 카르스텐 로트 교수가 참여 중인 아이스큐브 국제공동연구단은 이러한 내용을 과학기술분야 국제학술지 ‘사이언스’(IF: 63.83)에 발표했다. ‘메시에 77(M 77)’이라는 이름으로도 알려진 활동은하 ‘NGC 1068’은 인류에게 가장 익숙하고 또 가장 많이 연구된 은하이다. 1780년에 최초로 확인된 이 활동은하는 지구로부터 4천 7백만 광년 떨어져 있으며 지상에서도 쌍안경을 통해 관측할 수 있다. 그러나 Seyfert Ⅱ형으로 분류되는 활동은하 NGC 1068은 블랙홀이 있을 은하 중심부가 지구에서는 가려져 보이지 않는다. Seyfert Ⅱ형 은하에서는 은하 중심 방향으로 나선형을 그리며 떨어지는 밀도 높은 가스 또는 입자들에서 생성된 높은 에너지 방사선이 은하핵 주변의 토러스 구조 형태의 먼지에 가려진다. 빛과 다르게 수많은 중성미자는 밀도가 매우 높은 환경을 쉽게 벗어날 수 있으며 우리은하 밖에 퍼져있는 물질이나 전자기장에 의한 영향을 거의 받지 않고 지구에 도달할 수 있다. 따라서 중성미자는 우주에서 가장 극한 환경을 지닌 천체가 어떻게 작동하는지에 관한 질문을 푸는 열쇠가 될 수 있다. 아이스큐브 국제공동연구단은 최근 거대 중성미자 망원경을 통해 NGC 1068에서 온 테라전자볼트(TeV) 이상의 에너지를 지닌 80여 개의 중성미자를 관측하였다. 이 관측을 통해 국제공동연구진은 중성미자 천문학의 실현에 큰 한 걸음을 내딛었다고 밝혔다. 위스콘신대학교 매디슨의 프란시스 할젠(Francis Halzen) 교수는 “여러 중성미자의 관측은 해당 중성미자들을 만들어 낸 확인이 어려운 천체의 내부를 들여다 볼 수 있다”고 말했다. 독일 뮌헨 공과대학교의 박사후연구원인 테오 글라우흐(Theo Glauch) 박사 역시 “NGC 1068은 미래 중성미자 망원경들의 기준점이 될 수 있을 것”이라며 “중성미자는 NGC 1068 은하를 완전히 새로운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게 해줄 것”이라고 말했다. 물리학과 카르스텐 로트 교수 연구팀은 지난 2013년부터 아이스큐브 국제공동연구단의 정규 구성원으로 참여하고 있다. 아이스큐브 건설 초기부터 국제공동연구단에서 활동 중인 카르스텐 로트 교수는 “10년이 넘는 데이터 수집을 통해 Seyfert Ⅱ형 은하로부터 중성미자가 방출된다는 획기적인 발견을 했다”며 “이러한 발견은 우리가 우주에서 관찰할 수 있는 강력한 에너지를 지닌 입자들의 기원을 이해하는 데에 도움을 줄 것”이라고 밝혔다. 카르스텐 로트 교수 연구팀은 남극점에 위치할 차세대 검출기 프로젝트에도 참여하고 있으며 아이스큐브 검출기의 업그레이드를 위한 새로운 검출기 교정 시스템을 양산 중이다. 한국연구재단의 지원을 통해 개발 및 양산 중인 이 시스템은 2천여 개 이상의 소형 카메라와 LED 광원들을 사용하여 검출기를 구성하는 남극 빙하의 성질을 더욱 정밀하게 연구하고자 설계되었다. 이를 통해 이번 중성미자 근원의 확인과 같은 발견의 기회가 더욱 많아질 것으로 기대된다. ※ 논문명: "Evidence for neutrino emission fom the nearby active galaxy NGC 1068," The IceCube Collaboration: R. Abbasi et al. ※ 저널: Science, DOI:10.1126/science.abg33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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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2022-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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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연과학대학, 생활 속의 기초과학캠프 성료
- 본교 자연과학대학(학장 최철용)은 UN 세계기초과학의 해 선포를 기념하여 지난 7월 23일 자연과학캠퍼스에서 생활 속의 기초과학캠프를 개최하였다. 본 캠프는 우수 기초과학 인재를 발굴하고 중ㆍ고등학생의 진로 설정에 도움이 되고자 물리학과, 수학과, 생명과학과, 화학과 등 여러 학문 분야의 교수들이 힘을 합쳐 개최하였다. 이번 캠프에는 전국 130여 개 학교에서 470여 명의 학생이 참가하였다. 물리학과에서는 김범준 교수가 ‘물리로 보는 세상’, 이주열 교수가 ‘창의과학 상상터 체험마당 – 물리요?’라는 주제로 강연 및 체험을 진행하며 일상 속 물리의 즐거움을 전달하였다. 수학과는 최우철 교수가 ‘세상을 움직이는 몇가지 수학 이야기’, 홍영준 교수가 ‘인공지능 속 수학’이라는 주제로 미래를 이해하는 언어로써 수학을 소개하였다. 생명과학과에서는 윤환수 교수가 ‘생명의 기원과 진화’, 배외식 교수가 ‘건강한 삶을 위한 생명과학’이라는 주제로 재미있고 흥미로운 영상을 통해 생명과 건강, 세포 및 면역의 개념을 쉽게 설명하였다. 화학과는 신광민 교수가 ‘노벨상으로 알아보는 촉매화학’, 손용근 교수가 ‘지속가능성과 화학’이라는 주제로 세상을 바꾼 화학자의 이야기를 들려주며 세상에 큰 기여를 하는 화학이라는 학문에 대하여 소개하였다. 이날 참가자들은 연사와 적극적으로 소통하고 강연 후에도 질의응답을 이어가는 등 능동적으로 캠프에 참여하였다. 참가 학생들은 "평소 학교 교육에서 경험할 수 없는 주제를 대학 교수님들께서 직접 강의해주어서 너무 좋았다”며 “어렵고 멀리 있는 기초과학이 아닌 일상생활 속 기초과학을 쉽게 접할 수 있어서 흥미로웠다”고 소감을 밝혔다. 최철용 자연과학대학장은 “이번 캠프를 통해 기초과학이 어렵고 지루하다는 인식과 편견을 깨고, 학생들이 세상을 바꾸는 사이언티스트를 꿈꾸고 경험하길 바란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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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2022-0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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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합뉴스 2022.08.01] 기초과학연 중이온가속기연구소 홍승우 소장 취임
- 연합뉴스 2022년 8월 1일에 실린 기사 발췌 출처: https://www.yna.co.kr/view/AKR20220801120500063?input=1195m 기초과학연 중이온가속기연구소 홍승우 소장 취임 [기초과학연구원(IBS)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대전=연합뉴스) 김준호 기자 = 기초과학연구원(IBS) 중이온가속기연구소 홍승우(63) 소장이 1일 취임해 3년 임기에 들어갔다. 홍 소장은 이날 열린 취임식에서 연구소 도약을 위해 저에너지 가속장치 구간 빔 인출, 빔을 활용한 조기 성과 도출, 고에너지 가속장치 구축 조기 착수 등 비전과 목표를 제시했다. 홍 소장은 "중이온가속기연구소의 목표를 달성하려면 자율성과 독립성에 기반한 건전한 조직문화와 사명감이 중요하다"며 "역량을 다해 봉사하고 성실히 책무를 다하겠다"고 말했다. 성균관대 물리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텍사스대에서 물리학 박사학위를 취득한 홍 소장은 현재 성균관대 물리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미래창조과학부 원자력이용개발전문위원, 한국물리학회 이사, 중이온가속기이용자협회장 등을 역임했다. kjunh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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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2022-0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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