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문초록
16~19세기 동아시아 삼국에서 공통으로 재해, 기근, 병화 등의 중대한 생존 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流民圖를 제작했다. 동아시아 삼국, 각 시대에 있었던 생존 위기를 극복하는 하나의 수단이 바로 유민도였다. 유민도는 미적으로 아름답지 않아서 오랜 기간 주목 받지 못한 그림이지만, 재해에 대한 대응과 구휼 과정 등을 유민도를 통해 관찰할 수 있어서 주목해야 할 그림이다. 유민도는 크게 두 가지 목적으로 기능했는데 첫째 목적은 유민들의 참상을 군주에게 보고하고, 감계화처럼 군주로 하여금 자신을 성찰하게 하는 수단으로써 진상되었다. 둘째 목적은 민간에 선전하여 재해의 참상을 알리는 동시에 판매하고 모금함으로써 구휼을 가능케 했다.
유민도의 시작은 송대 정협의 유민도에서 시작되었고, 명・청대와 조선, 일본 에도 시기에 유민도가 제작되었다. 유민도의 특징에서 유사점을 기준으로 명과 조선, 청과 일본 에도로 크게 분류할 수 있지만, 그 속에서도 차이가 존재한다. 우선 명대와 조선 시기에 사대부와 관료들이 유민들의 참상을 유민도로 제작해서 군주인 황제와 왕에게 진상하는 경로가 유사하지만, 각 국의 군주가 유민도를 대하는 태도와 경제・사회 구조에 따라 차이를 보였다. 한편 청대와 일본 에도 시기에 유민들의 참상을 官이 아닌 民間을 대상으로 알리고 선전하면서, 각계 인사들이 구휼 자금을 기부하도록 독려하는 목적에서 유민도가 제작된 것이 공통점이다. 그리고 청의 유민도는 민간의 영역이 커진 변화 속에서도 여전히 관의 개입을 바라는 모습이 유민도 속에 반영되어 있지만, 일본 에도 시기에 제작된 유민도에 민간의 모습만 보여 차이가 존재한다. 이와 같은 유민도 속의 차이는 각 시대와 국가의 구조와 특징에 따라 재해에 대응하는 모습들이 달랐음을 입증하고 있다.
주제어 : 유민도(流民圖), 재해(災害), 구휼(救恤), 도간(圖諫), 재분배(再分配), 자선조직(慈善組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