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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19회 한국분석철학회 대학원생분과 워크숍 (8월 23일)
- 제19회 한국분석철학회 대학원생분과 워크숍의 세부 일정이 아래와 같이 확정되어 안내드립니다. 일시: 2024년 8월 23일 금요일 13:00 ~ 18:30 (개회식 시작 오후 12:55) 장소: 성균관대학교 인문사회과학 캠퍼스 퇴계인문관 31609호 키노트 스피커: 남기혁 선생님 (연세대학교 언더우드 국제대학 / UMass 철학 박사 / 연구 분야: 형이상학, 메타형이상학) 금번 워크숍에서는 연세대학교 언더우드 국제대학에 계신 남기혁 선생님을 키노트 스피커로 모시고 발표를 듣는 시간을 가지며, 총 4분의 대학원생 발표자들의 발표를 듣고자 합니다. 이번 워크숍에는 유독 지원자가 많아 최대한 많은 분들께 발표 기회를 드리고자 이전보다 더 많은 발표자를 모시게 되었습니다. 회원님들의 많은 관심에 감사드리며, 지속적인 응원 부탁드립니다. <세부 일정 및 초록> 개회: 오후 12:55 ~ 13:00 발표 1: 하원재(연세대 철학 박사) / 13:00-13:50 (발표 30분, Q&A 20분) 제목: 존재론들을 표상하기: 규약주의 이차원 양상 모형 초록: 어떠한 언어가 어떤 논쟁을 충분히 다룰 수 있으려면, 그 언어는 그 논쟁을 다루기 위한 논리적 구문론 및 이에 상응하는 적절한 표상적 장치를 갖고 있어야 한다. 그렇다면 존재론적 논쟁은 어떤 언어를 통해 다루어짐이 마땅한가? 이 발표에서, 나는 존재론어가 바로 그 언어라는 관점인 ‘보수주의적’ 관점에 의문을 제기하며, 그 대안으로 규약주의 이차원 모형을 갖는 새로운 언어를 제안한다. 발표에서는 이 언어가 갖는 모형의 형식적 특성 및 이에 대한 철학적 해석이 논해질 것이다. 발표 2: 이경근(연세대 철학과 석사) / 13:50-14:40 (발표 30분, Q&A 20분) 제목: Everything. Everywhere. All at once? 초록: Absolute generality concerns an ultimately general sense of Everything. It’s hard to deny that such a statement which quantifies over absolutely everything appears to be effable in English. However, the culprit is that consequence of accepting that sentence is disastrous inconsistency. Common response against this notorious paradox is to ban absolute generality for its absurdity, but statement of banning itself has been considered as opaque and contradictory. In this regard, this paper proposes a semantic solution to censor absolute generality. Understanding truth in terms of model not only provides a compelling censorship of absolutely general statements, but also aligns with semantics of ordinary English. 휴식: 오후 14:40 ~ 15:00 (20분) 발표 3: 이동준(서울대 철학 석사) / 15:00-15:50 (발표 30분, Q&A 20분) 제목: 정말로 위선자의 비난을 일축할 수 있는가? – Snedegar에 반대하여. 초록: 자신이 비난하려는 잘못을 자신도 저지른 위선자(hypocrite)에게는 비난할 자격이 없으며, 그렇기 때문에 이런 위선자의 비난을 일축할(dismiss) 수 있다는 생각은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진다. 그런데 위선자의 비난을 일축한다는 것은 정확히 어떤 행위를 하고 있는 것인가? Snedegar(2024)는 비난에는 비난자를 향해 자책감(remorse)을 표현하라는 이인칭적 요구가 포함되어 있으며, 위선자의 비난을 정당하게 일축할 수 있다는 것은 바로 이러한 요구를 정당하게 일축할 수 있다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이 글은 Snedegar의 설명을 받아들이면 우리의 비난 관행을 적절하게 이해할 수 없음을 사례를 들어 보이고, 더 나아가 비난에 비난자를 향한 어떠한 이인칭적 요구도 포함되어 있지 않음을 보일 것이다. 위선자의 비난에서 정당하게 일축할 수 있는 요구는 반드시 비난자를 향한 이인칭적 요구여야 하기 때문에, 우리가 정당하게 일축할 수 있는 어떠한 요구도 위선자의 비난에 포함되어 있지 않다. 결론적으로 이 글은 위선자의 비난을 정당하게 일축할 수 없다는 결론을 받아들이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주장한다. 발표 4: 김선중(FSU 철학 박사) / 15:50-16:40 (발표 30분, Q&A 20분) 제목: Kantian Constructivist Answer to the dilemma imposed by Evolutionary Debunking Arguments 초록: Evolutionary Debunking Arguments (EDAs) note that our moral beliefs are formed through the evolutionary process. Proponents of EDAs argue that if there is no explanatory relationship between evaluative attitudes and facts in a certain domain, or if there are no additional facts that explain both attitudes and facts, we should withhold our beliefs, or even if we hold them, they cannot be justified (Korman 2019, Noonan 2023). Sharon Street (2006), more specifically, argues that these EDAs put moral realism, which claims that moral facts exist independently of our evaluative attitudes, into a dilemma. According to her, moral realists must either reject the influence of evolution on the formation of moral beliefs or abandon the claim that moral facts exist independently. The former option is unacceptable because it denies the most plausible explanation for the formation of moral beliefs, and the latter option is unattractive for realists because it abandons the very doctrine of moral realism. Street claims that moral constructivism can successfully address this dilemma while securing the reliability of our moral judgments (Street 2011). Humean constructivists hold that our moral beliefs are constructed by our moral attitudes, and because these constructed moral beliefs in turn constitute moral reality, the reliability of moral beliefs can be secured. However, there are questions about whether Humean constructivism successfully addresses the theoretical difficulties posed to moral realism. Isn't the procedure that constitutes moral judgments also an accidental product of evolution? This raises the possibility that moral constructivism may fall into the same dilemma faced by moral realists. I will examine this concern and defend moral constructivism understood in a different way. Specifically, relying on Christine Korsgaard's Kantian constructivism, I will argue that the procedures constituting moral judgments are instances of self-legislation, the activity of reflective consciousness that is actualized in various contexts. In other words, the construction of moral facts is not merely a coincidental product of evolution but a result of the essential activities of reflective agents. This is a self-constitutive activity of self-consciousness (Korsgaard 1996). That is, the procedure of making moral judgments has the structure that self-reflective beings necessarily have. Therefore, the formation of moral judgments, despite differences in their details, depends or should depend on the same procedural structure. This structure may have been reached through evolution, but the function of rational agency to constitute moral reality necessarily exists as long as one's reflectivity is achieved. In conclusion, this defense will demonstrate that Kantian constructivism can circumvent specific criticisms it faces while maintaining the advantage of being free from the dilemma posed by EDAs. 휴식: 오후 16:40 ~ 17:00 (20분) 키노트 스피커 발표: 남기혁 선생님 (연세대학교 언더우드 국제대학, UMass 철학 박사) / 17:00-18:30 (발표 60분, Q&A 30분) 제목: 허용주의와 비근본적 존재자들 초록: 흔히 비근본적 존재자는 이론 평가에 실질적인 영향이 없을 정도로 존재론적 부담이 없다고 회자된다. 이런 일반적인 태도를 ‘비근본적 존재자에 대한 허용주의’, 줄여서 ‘비근본성-허용주의’라 부르자. 다른 한편으로, 비근본적 존재자는 그 형이상학적 근거들 (grounds)와 수적으로 구별된다고 이해하는 이들이 많다. 비근본적 존재자에 대한 이런 이해방식으로 ‘DISTINCT’라 하자. 본 발표는 비근본성-허용주의가 일반적으로 이해되는 방식과 DISTINCT가 긴장관계에 있다고 주장한다. 본 발표에서는 비근본성-허용주의에 대한 가장 특기할만한 방어전략을 소개하고, 이 전략이 DISTINCT와 어떤 면에서 상충하는지 설명하고자 한다. 이 논의를 통해 본인은 보다 약한 허용주의 논제를 발전시킨 후, 이 논제가 보다 일반적인 메타-형이상학적 맥락에서 갖는 의의를 설명하고자 한다. 폐회: 18:30 ~ 1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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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2024-0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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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유림(석사) American Philosophical Association Central Division Meeting 페이퍼 억셉
- 인유림 씨(석사)의 페이퍼 "Musical Revision as Fission"이 American Philosophical Association Central Division Meeting Colloquium 세션에 억셉되어 2025년 2월에 발표 예정입니다. American Philosophical Association(https://www.apaonline.org/)은 영미 철학계의 가장 저명한 학회로서, 발표회 페이퍼 억셉률은 전체 20~25%정도 입니다. 축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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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2024-0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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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철학과인문교육" 연구소 제21회 논문발표회, 이승일 교수 (한국외국어대학교)
- 성균관대학교 "철학과인문교육" 연구소의 제21회 논문발표회를 7월 5일(금요일) 오후 2:40~6:00에 퇴계인문관 31609호에서 개최하게 되어 아래와 같이 알려드립니다. 이번 발표회에서는 미국에서 박사과정을 하고 있는 염인철, 정대휘, 두 분의 동문과, 한국외국어대학교 철학과의 이승일 선생님 이렇게 총 세 분을 모시고 아래와 같이 발표를 진행하고자 합니다. 학생분들과 선생님들의 많은 관심과 참여 부탁드립니다. 소개 웹주소 염인철: https://inchulyum.weebly.com/ 정대휘: https://philosophy.ucsb.edu/people/daehwi-jeong 이승일 교수: https://philosophy.hufs.ac.kr/philosophy/5816/subview.do?enc=Zm5jdDF8QEB8JTJGcHJvZmwlMkZwaGlsb3NvcGh5JTJGMjYxJTJGNDU4NCUyRmFydGNsVmlldy5kbyUzRnBhZ2UlM0QxJTI2c3JjaENvbHVtbiUzRCUyNnNyY2hXcmQlM0QlMjY%3D 일 시: 2024년 7월 5일 금요일 오후 2:40~6:00 장 소: 성균관대학교 퇴계인문관 6층 609호(#31609) 일 정: 2:40~2:50 등록 및 개회 인사 2:50~3:40 염인철 (Ohio State University/박사과정) Open Texture and Fictional Indeterminacy 3:40~4:30 정대휘 (University of California, Santa Barbara/박사과정) Impossible Worlds and What They Cannot Explain 4:40~6:00 이승일 (한국외국어대학교) 양자역학은 형이상학적 미결정성의 사례를 제공하는가? 염인철 발표 제목: Open Texture and Fictional Indeterminacy 초록: This paper argues that the predicate “are identical characters” exhibits open texture. Open texture is a kind of linguistic indeterminacy where no existing linguistic practices or non-linguistic facts determine the applicability of a predicate to certain cases. The paper uses Everett’s puzzle about inconsistent fictional identity to motivate the claim of open texture. I consider potential solutions to the puzzle and argue that none can be justified solely on the basis of current linguistic practices or non-linguistic facts, supporting the open texture diagnosis. I conclude by sketching a Quinean approach to resolving open texture in fictional ontology, suggesting that we should evaluate the theoretical costs of each option and choose the one that minimizes revisions to our web of beliefs. 정대휘 발표 제목: Impossible Worlds and What They Cannot Explain 초록: In recent times, a group of philosophers, often dubbed 'impossible-worldists,' including Yagisawa (1988, 2010), Priest (1997, 2016a, 2016b), Restall (1997), Berto (2010), Jago (2012, 2014), Nolan (2017), and Berto and Jago (2019), have embraced impossible-worldism—a view that accepts impossible worlds into their ontological category. However, this paper presents an argument against impossible-worldism. Specifically, I contend that there is a dilemma for impossible-worldism; impossible-worldists will either presuppose a question to determine which kinds of impossible worlds they accept, or they will neglect certain specific cases of problems they claim to solve. But in both horns, the motivation for impossible worldism will be diminished. 이승일 발표 제목: 양자역학은 형이상학적 미결정성의 사례를 제공하는가? 초록: 미결정성(indeterminacy)은 우리 주변에서 쉽게 관찰할 수 있는 현상이다. 예를 들어, 책상 모서리에 위치한 탄소 원자가 그 책상의 일부인지 아닌지, 혹은 머리카락의 절반 정도를 잃은 사람이 대머리인지 아닌지는 명확하게 결정할 수 없어 보인다. 러셀과 루이스, 에반스 등의 영향으로, 전통적으로 다수의 철학자들은 모든 미결정성이 의미론적이거나 인식론적인 이유로 발생하며, 세계나 세계의 일부 자체가 미결정성의 근원이 될 수는 없다고 생각해왔다. 즉, '형이상학적' 미결정성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최근 몇몇 철학자들은 형이상학적 미결정성을 옹호하며 그에 대한 체계적 분석을 제시하고 있다. 그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은 윌슨의 Determinable-based Account이다. 윌슨의 이론에 따르면, 형이상학적 미결정성은 한 대상이 determinable 속성을 지니면서 동시에 그 determinable에 대한 유일한 determinate를 예화하지 않을 때 발생한다. 윌슨을 포함한 이 이론의 옹호자들은 표준 양자역학의 중첩과 얽힘이 윌슨의 이론에 의해 적절하게 분석될 수 있는 중요한 형이상학적 미결정성의 사례를 제공한다고 주장한다. 본 발표는 이들의 주장을 비판적으로 검토한다. 발표자는 표준 양자역학이 형이상학적 미결정성의 사례를 제공한다는 주장을 반박하기 위해 필요한 이론적 비용이 상대적으로 작음을 보임으로써, 표준 양자역학이 형이상학적 미결정성의 사례를 제공한다고 볼 충분한 이유가 없음을 주장할 것이다. 오시는 방법: 지하철 4호선 혜화역에서 내리셔서 1번 출구로 나온 후 전용 정류장에서 성균관대 셔틀 탑승 (400원; 교통카드 사용 가능) 발표회와 관련하여 궁금하신 점이 있으시면 아래의 연락처로 문의해 주시기 바랍니다. 철학과인문교육연구소 연구소장 이정규 / 02-760-0208 / jeonggyulee@skku.edu 철학과인문교육연구소 조교 인유림 / in.yr0805@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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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2024-0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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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영성, 김정균, 배열림 (박사수료), 논문 출판: “The Emergence of Analytic Philosophy in Korea” 『APA Studies』
- 김영성, 김정균, 배열림의 논문 (공저: Nikolaj Jang Lee Linding Pedersen, 박성수) “The Emergence of Analytic Philosophy in Korea”가 APA Studies on Asian and Asian American Philosophers and Philosophies에 출판되었습니다. 축하합니다! 관련링크: https://www.apaonline.org/page/asian_apastud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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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2024-0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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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철학과인문교육" 연구소 2024년 봄 해외학자 초청 강연, Youichi Matsusaka 교수 (도쿄도립대학교) (5월 3일)
- 성균관대학교 "철학과인문교육" 연구소의 2024년 봄 해외학자 초청강연을 5월 3일(금요일) 오후 4:00~6:00에 퇴계인문관 31406호에서 개최하게 되어 아래와 같이 알려드립니다. 이번 발표회에서는 도쿄도립대학교(Tokyo Metropolitan University)의 Youichi Matsusaka 교수님께서 "Further Words on Words: A Naturalistic Approach to the Ontology of Linguistic Entities"라는 제목으로 발표하실 예정입니다. 선생님들과 학생분들의 많은 관심과 참여 부탁드립니다. 발표 제목: Further Words on Words: A Naturalistic Approach to the Ontology of Linguistic Entities 초록: In his much-discussed paper "Words", David Kaplan proposed a naturalistic approach to the ontology of words. While Kaplan's criticism of the shape-theoretic conception of words has been widely accepted, one of his central claims – that differences in sound or shape between tokens of the same word can be "just about as great as you would like" – has faced near-universal rejection from his critics. An exception to this consensus has emerged in the recent work of Una Stojnić. By taking Kaplan's suggestion that words are dynamic, worldly entities seriously, I will attempt to defend Kaplan's contested claim and compare my position to Stojnić's. In doing so, I will emphasize the role of token resemblance in the evolution of words, a factor that has been overlooked in the existing literature on this topic. Bio: Prof. Youichi Matsusaka was born in Kyoto, Japan. He completed his B.A. at Kyoto University, earned his M.S. at the University of Tokyo, and achieved his Ph.D. at the University of California, Los Angeles. 세부 일정은 다음과 같습니다. 일 시: 2024년 5월 3일 금요일 오후 4:00~6:00 장 소: 성균관대학교 퇴계인문관 4층 406호(#31406) 일 정: 4:00~6:00 Youichi Matsusaka (Tokyo Metropolitan University) Further Words on Words: A Naturalistic Approach to the Ontology of Linguistic Entities 발표회와 관련하여 궁금하신 점이 있으시면 아래의 연락처로 문의해 주시기 바랍니다. 철학과인문교육연구소 연구소장 이정규 / 02-760-0208 / jeonggyulee@skku.edu 철학과인문교육연구소 조교 인유림 / in.yr0805@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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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2024-0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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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철학과인문교육" 연구소 제20회 논문발표회 (2월 2일)
- 성균관대학교 "철학과인문교육" 연구소의 제20회 논문발표회를 2월 2일(금요일) 12:50~18:00에 퇴계인문관 31709호에서 개최하게 되어 아래와 같이 알려드립니다. 이번 발표회에서는 김영성, 인유림, 두 분의 대학원생과, 박성수, 남기혁, 이병덕 선생님 이렇게 총 다섯 분을 모시고 아래와 같이 발표를 진행하고자 합니다. 학생분들과 선생님들의 많은 관심과 참여 부탁드립니다. 일 시: 2024년 2월 2일 금요일 오후 12:50~6:00 장 소: 성균관대학교 퇴계인문관 7층 709호(#31709) 일 정: 12:50~1:00 등록 및 개회 인사 1:00~1:45 김영성 (성균관대 박사수료) 합의 이론을 통해 친구와 연인 구분하기 1:45~2:30 인유림 (성균관대 석사수료) How to Achieve Practical Rationality 2:40~3:40 남기혁 (연세대) The Primitivist’s Dialectic 3:50~4:50 박성수 (성균관대/연세대) Against an Anti-Realist Account of Theft in Virtual Reality: Why Virtual Objects Exist 5:00~6:00 이병덕 (성균관대) A Kantian Critique of Benatar’s Annihilation Account 김영성 발표 제목: 합의 이론을 통해 친구와 연인 구분하기 초록: 본고에서는 '친구와 연인의 구분에 의한 논증'이 제시된다. 이 논증에 의하면, 자발적이고 친밀한 인간관계에 대한 기존의 모든 이론들은 친구관계와 연애관계를 적절히 구분해줄 수 없다는 점에서 문제가 있다. 나의 합의 이론은 그렇지 않다. 인유림 발표 제목: How to Achieve Practical Rationality 초록: This paper deals with how to achieve practical rationality, specially focusing on the discussion surrounding the formulation of a requirement for means-end coherence (“MEC” for short). A significant amount of recent debate has focused on how to formulate this requirement, with two views predominant among philosophers: narrow-scope and wide-scope formulations. However, I argue that neither of them is satisfactory. The narrow-scope formulation is excessively restrictive, failing to accommodate an agent’s rational decision to abandon her end. Meanwhile, the wide-scope formulation is overly permissive, licensing wishful thinking. Consequently, I propose a middle ground by advocating the medium-scope formulation as the preferred rational requirement for MEC. Additionally, I extend my argument to formulate another requirement of practical rationality known as ‘Enkrasia.’ If these arguments prove successful, they convey an important lesson: one cannot achieve practical rationality by dropping one’s belief. 남기혁 발표 제목: The Primitivist’s Dialectic 초록: Many would agree that, in case it is shown that other things are equal, a reductive theory ought to be preferred over a non-reductive, primitivist theory. For example, it is extremely rare for one to reject the reductionist position of a given domain while conceding that the proposed reductive procedure is successful. Typically, the opposition consists in denying that the subject matter can be reduced. This suggests an unspoken rule of the dialectic that, if something can be reduced, then it should be reduced. In a similar light, conventional metaphysical wisdom tells us that primitivist positions should only be accepted as a last resort. In this talk, I argue that these two attitudes reflect some interesting features of the dialectical obligations one takes on by virtue of advocating a primitivist position. This, I argue, is not merely a psychological or sociological explanation of why these attitudes are so widespread, but instead is something that has profound implications for our epistemic evaluation of theories. 박성수 발표 제목: Against an Anti-Realist Account of Theft in Virtual Reality: Why Virtual Objects Exist 초록: This paper delves into the philosophical debate surrounding the existence of virtual objects. According to an influential anti-realist view about virtual objects, virtual objects are mere pretended game objects and therefore do not exist. I disagree with this view since I believe that there is a fundamental difference between make-believe games and virtual realities. This paper aims to clarify what this difference is and present a prima facie good argument for a realist view about virtual objects. 이병덕 발표 제목: A Kantian Critique of Benatar’s Annihilation Account 초록: Benatar argues that our lives are overall bad. But he denies that his pessimist view supports suicide, claiming that death is also bad. He defends the latter claim partly by advocating the annihilation account, which holds that one’s annihilation is an independent bad. In support of this account, he offers two reasons. His primary reason is that the annihilation of an individual thwarts their interest in continued existence. His secondary reason is that if damaging an object of value is bad, then annihilating the object is bad as well. The purpose of this paper is to argue against Benatar’s annihilation account from a Kantian point of view. For this purpose, I argue mainly for three things. First, even if one’s interest in continued existence is thwarted, this in itself does not support Benatar’s claim that one’s annihilation is an independent bad. Second, while there are situations where damaging an object of value is considered bad, the destruction of such an object in itself is not bad. In a similar vein, while there are situations where annihilating someone is considered bad, the annihilation of an individual in itself is not bad. Third, even if one’s annihilation is an independent bad, this does not provide a reason to refrain from suicide. 오시는 방법: 지하철 4호선 혜화역에서 내리셔서 1번 출구로 나온 후 전용 정류장에서 성균관대 셔틀 탑승 (400원; 교통카드 사용 가능) 발표회와 관련하여 궁금하신 점이 있으시면 아래의 연락처로 문의해 주시기 바랍니다. 철학과인문교육연구소 연구소장 이정규 / 02-760-0208 / jeonggyulee@skku.edu 철학과인문교육연구소 조교 인유림 / in.yr0805@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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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2024-0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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